[D-660] 왜 나는 파이어족이 되어야 했는가

결혼한지 거의 10년이 된 우리 부부.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우린 마음놓고 놀러 다녔다. 신혼 초, 아내의 커리큘럼이 아직 채 끝나지 않아 시간이 아주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둘의 일정만 맞출수 있다면 어디론가 놀러 가곤 했다. 그마저 커리큘럼을 모두 끝낸 다음 부터는 ‘어떻게 하면 시간을 쪼개 가까운 일본 여행이라도 다녀올까’ 하는 것이 우리 부부의 고민이었다.

 

시간은 많은데 돈이 없는 시절


비교적 휴가기간이 긴 여름, 겨울 휴가에는 더 멀리, 더 럭셔리하게 다녀오고 싶었으나 문제는 돈이었다. 1박에 수십만원씩 하는 숙소로 1주일만 다녀와도, 숙박비로만 수백만원이 깨져 버리는 것이다. 물론 그 정도를 감당할 월급은 받고 있긴 했지만 월급을 진탕 여행경비로 써버릴 수는 없었다. 자가 주택도 없이 원룸에 월세 거주하던 신혼부부였기에 욜로욜로 하면서 수입을 탕진해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던 것이다. 아이도 없으니 ‘시간은 많은데 돈이 없는 시절’이었던 것이다.

 

 돈은 있으나 시간이 없는 시기


그리고 적당한 시점(?)에서 첫째가 태어났다. 연이어 둘째가 태어났다.

우린 더욱 열심히 소득을 올려야 했고 더욱 열심히 일했다. 다행히 아이들이 어릴 때에는 큰 돈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벌려놓은 일이 많아지다 보니 이번엔 시간이 없었다. 수입은 확실히 늘었고, 수익형 자산들도 쌓이다보니 그야말로 ‘돈이 돈을 버는’ 단계에 접어들었으나 시간은 점점 부족하게 되었다. 사업체를 유지해야 하니 넉넉히 휴가를 다녀오기도 힘들었다. 이번엔 ‘돈은 있으나 시간이 없는 시기’를 보내게 된 것이다. 

 

 부모의 시간과 돈은 있으나 아이의 시간이 부족한 시기


어느새 첫째의 초등학교 입학을 바라보게 되었다.

만약 이 시기를 지금처럼 보내게 되면, 아이는 눈깜빡할새 중학생이 되어버릴 것이고, 그때 가서 우리가 일을 조금 줄이고 시간을 마련한다 하더라도, 이번엔 아이의 시간이 모자라는 때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부모의 시간과 돈은 있으나 아이의 시간이 부족한 시기’를 보내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리하여 우리 부부는 중대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아이의 시간이 부족해지는 그 때가 오기 전에, 우리가 시간을 어떻게든 만들어내기로 하였다. 그리고 그 기간동안 근로소득, 사업소득은 당분간 상당부분 포기하기로 하였다. 파이어족이 되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파이어족 - 강환국 작가

 

시중에 출판된 파이어족 관련 서적들을 읽어보았는데, 한국형 파이어족의 많은 사례들이 딩크족이나 미혼 남녀에 관한 이야기였다. 쳇바퀴 같은 직장생활로부터 벗어나, 여유를 즐기는 삶. 그것이 한국형 파이어족에 대한 묘사였다. 반면 미국 파이어족 관련 서적들은 자녀와 함께 하는 삶을 계획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의 경우는 후자에 더 가까웠다. 아마도 한국의 일반적인 가정 상황에서는 아이들의 사교육비를 유지한 채, 파이어족이 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주로 딩크족이나 비혼 남녀들을 상대로 파이어족 마케팅을 하는 것 같다. 

 

물론 우리 가정도 지극히 평범한 한국형 가족이다. 사교육 및 교육문제를 초월하여 아이들을 양육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 가정의 상황에 맞는 파이어 플랜을 그려 나가는 중이다. 

 

이제 조기은퇴까지 22개월 가량 남았다. 플랜은 아직도 수정보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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